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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카드뉴스] 5.18, 전두환 정권이 가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추념하며

[카드뉴스] 5.18, 전두환 정권이 가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추념하며

 

 

5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민주화를 위해 전두환과 신군부에 저항한

시민들의 항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과 신군부는 군을 투입해

시민들을 학살했습니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197912.12 군사반란과

19805.17내란을 일으키고, 5.18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정권의 합리화와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안보 위협, 불안, 공포를 조장했습니다.

무고한 국민을 적으로 규정, 국가폭력을 가했습니다.

 

 

5.18로부터 약 한달 전, 사북항쟁.

421일부터 사측과 어용노조의 횡포에 맞서

광산노동자와 가족 6,000여 명이 생존권을 위해 항쟁했습니다.

 

56일부터 계엄사 합동수사단은 이들을 연행,

배후세력을 추궁하고 간첩으로 내몰며 고문했습니다.

계엄사가 공수부대 투입을 고려했던 광주학살의 전주곡이었습니다.

 

 

간첩조작. 광주학살 이후, 국가폭력은 형태를 달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하 보안사와 안기부, 치안본부는

정권에 부응하며, 승진과 포상의 수단으로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수사 간 불법 연행, 구금, 고문이 행해졌고

검찰 조사와 재판은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권력에 통제되어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일가족, 납북어부, 유학생, 재일동포, 제주도민, 생계를 위해 일본에 갔던 이들,

무고한 국민들 모두가 고문 끝에 간첩으로 둔갑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불법 연행, 구금, 고문, 조작 등 국가폭력으로

거듭되는 시민들의 저항과 민주화의 열망을 억눌렀으나

 

그러나

시민들의 민주화와 인권 회복 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마침내 봄이 찾아왔습니다.

 

 

국가폭력은 시민들에게 잊히지 않고 기록되고 기억되었습니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외면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마주 보았습니다.

 

사북항쟁은 노동자들의 소요사태가 아니며,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폭동과 내란이 아니며,

조작간첩은 말 그대로 간첩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삶은 개인의 고통어린 단면이 아닌,

민주화와 인권 증진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면면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들의 희생과 헌신의 교훈과 유산은

민주화와 인권 증진을 위한 항구한 여정의

밑거름과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