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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특집] 그만 속숨허라, 그만 숨어라. 이제 숨 쉬어라.

[특집] 그만 속숨허라, 그만 숨어라. 이제 숨 쉬어라.

 

제주의 근현대사는 4.3에서 간첩조작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이 반복되었고, 그 아픔은 여전히 지금도 곳곳에 있습니다.

 

‘속숨허라’ 제주말입니다. ‘숨을 속으로 삼켜라’라는 뜻이랍니다. 숨을 속으로 삼키면 말을 내뱉을 수 없습니다. 말을 내뱉기 위해서는 숨을 내쉬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숨을 속으로 삼키라는 말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숨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숨죽이고 살아야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주 4.3과 그로 인한 3만 여명의 죽음, 그 후 죽지 못해 살아나간 삶이 담긴 말입니다.

 

<사진 1. 제주4.3희생자 마을별 분포지도(출처 : 제주4.3아카이브)>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의 제주는 과거 수탈의 땅이었습니다.

 

일제강점 간 전 국토와 국민이 일제로부터 수탈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제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당수의 제주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일본에 특히 오사카에 자리 잡았습니다. 일제강점 말 야욕으로 전쟁을 벌인 일본은 수세에 몰리자 제주도를 전략기지로서 군사요새화 하였습니다. 일본군 6만여 명이 제주에 주둔하였습니다. 일제와 일본군에 의한 수탈과 동원은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의 패망 후 광복이 찾아왔을 때 제주를 떠나 타국·타향살이에 지친 고향 주민들이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대거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게 부족한 제주에서 사람들의 희망과 열망만이 들끓는 가운데 긍정적인 변화는 요원하였고 상황은 악화되어갔습니다. 물자가 부족했고,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식량난이 겹쳤습니다. 민심 또한 악화되었습니다.

 

미군정은 일제에 부역한 경찰들을 군정경찰로 다시 등용하고 치안을 맡겼습니다. 군정 관리들은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사리를 채우며 부정행위를 일삼았습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이 3월 10일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일어났습니다. 미군정은 도민을 살상한 경찰의 발포 사건을 추궁하지 않고 좌익세력 척결에 주력합니다. 1947년 3월 14일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여기고 타 지역의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1948년 4.3. 발발 직전까지 2,500명이 구금당하였습니다.

 

<사진 2. 47.3.1 경찰 발포 사건 장소였던 관덕정 앞(좌), 4.3 사건 당시 사라진 곤을동 마을(우)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제주 역사여행 간 촬영)>
<사진 3. 중산간지대로 피신한 제주 사람들(출처 : 제주4.3 아카이브)>

 

1948년 4월 3일 제주도 내 남로당은 무장대를 조직하여 관과 경찰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정부 수립 후 제주도의 상황을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무력진압에 나섰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강경진압작전을 실시하여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키기에 이릅니다. 대다수의 마을이 소각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들은 가족 중에 청년이 사라진 집안사람들을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대살’을 자행하였습니다. 무구하고 무관한 사람들이 국가가 자행하고 동조한 폭력 앞에 소거되었고 절멸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속숨허여’ 조용히 가만히 숨죽이고 아무 말 않고 살아내야 했습니다.

 

<사진 4. 산으로 피신 갔다가 하산하는 주민들(출처 : 제주4.3아카이브)>

 

4.3 이후 제주는 불모의 땅이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또다시 제주도민들은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이들이 또 다시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과 염원을 품고 돌아왔을 때, 이들이 마주한 것은 형태만 다를 뿐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은 정권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무고한 이들이 고문을 통한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되었습니다. 짓지 않은 죄로 수감되어 풀려나 돌아온 이들을 맞이한 것은 ‘간첩’이라는 누명에 따른 냉대와 모멸, 오욕이었습니다. 이들은 보호관찰 속에서 ‘속숨허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삶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4.3의 진상이 밝혀지고 변화가 일었듯, 이들의 일부는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사진 5. 간첩조작사건 피해생존자 강광보 선생님 무죄 선고 사진(좌), 임문준 선생님 무죄 사진(우)(출처 : 노컷뉴스, 연합뉴스)>

속숨허지 않고 숨을 내쉬고 말을 내뱉을 수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살아내고 바라냄으로써, 기억을 잊지 않고 이음으로써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제주 4.3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국가폭력인 ‘간첩조작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주도의회가 민의를 반영해 공포한 ‘제주도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등의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난 해 제주도에서는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제주도는 이달부터 2차 실태 조사를 진행해 추가 피해자를 찾고,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참혹한 폭력과 학살의 현장이었던 수탈의 땅에서 희망과 바람을 담은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며칠 전 버스 안에서 탑승객 한 분이 제주 방언이 여럿 나타나는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책은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었습니다. 잊지 않고 잇기 위해, 살아내고 바라냈던 피해생존자들과 숨을 내쉬고 말을 내뱉기까지 연구소도 많은 이들과 함께 피해생존자들의 치유와 국가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쓸 것입니다.

 

<사진 6. 강광보 선생님과 함께 수상한 집 앞에서(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제주 역사여행 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