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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날조되었다.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간첩단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작했던 국가 공무원들은 특진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이었는지 재심을 하나씩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지난 2010년 7월 15일 재일동포 이종수 간첩사건의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국군기무사 전신)가 안기부(국정원 전신) 명의로 피고인을 .. 더보기
[39년 만에 밝혀져야 했던 진실] [39년 만에 밝혀져야 했던 진실] 어제 서울고등법원 서관 403호에서 재일동포 故 손유형 선생님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재판에는 손유형 선생님을 포함해 총 4분이 재심 대상자입니다. 결과적으로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선생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 사건에서 주범으로 몰려 무려 17년의 세월을 모국의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故 손유형 선생님은 다음 달 8월 31일로 선고가 연기되었습니다. 진실에 이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듯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는 물론 유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심적 고통을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들과 끝까지 연대하고 지지하겠습니다! 더보기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 지난 26일 오사카에서 출판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 저자는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장 이철 선생님입니다. 재일동포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랑하는 고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사는 삶을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고국을 찾은 20대 청년 이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독재정권이었습니다. 1975년 고국을 찾은 이철 선생님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하게 되고그 이후로 1988년까지 13년을 고국의 감옥에서 청춘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석방이 되어서도 13년 동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이철 선생님은 자녀들에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1995년부터 조금씩 자신이 모국에서 겪어.. 더보기
'일본 거점 간첩사건' 유족들, 재심서 "날조된 혐의로 17년간 옥살이"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난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던 고 손유형 선생의 재심관련 보도입니다. 고 손유형 선생님은 재일동포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모국에서 17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억울함을 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은 가족들이 재심을 신청하고 고인의 억울함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유형 선생님과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리고 피해자가 신청하기 전에 가해자인 국가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기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10525001086 '일본 거점 간첩사건' 유족들, 재심서 "날조된 혐의로 1.. 더보기
[동행] 재일동포 고 김병주 선생 항소심 시작 [또 시작되었습니다] 어제(13일) 재일동포 고 김병주 선생의 항소심 재판(부장판사 문광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재판은 지난 1심에서 재판부가 고 김병주 선생의 80년 비엔나 방문과 81년 북한 방문을 특수탈출 혐의로 인정하여 징역 4년형을 내린데 대한 항소심 재판이다. 특히 1심에서는 징역 4년에 대한 증거로 84년 4월 3차 공판 당시 김병주 피고인과 피고인의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심문 내용을 받아들였다. 이는 재심의 의미를 간과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재판은 검찰과 고 김병주 선생의 변호인 측(담당 변호인 조영선 변호사)이 쌍방 항소한 사건이다. 어제 열린 1차 항소심 재판에서는 검찰 측이 1심에서는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던 2명의 증인을 채택하였고, 재판.. 더보기
[이동석 선생 인터뷰-②] 얼마 전 우연히 만난 ‘그날이 온다’ LP판의 표지 모델 [인터뷰] 이동석 선생, 얼마 전 ‘그날이 온다’ LP판의 표지 모델을 만나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김치식당을 만났던 이동석 선생님의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 이번 인터뷰 기사에서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경험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 모국에서의 유학생활과 수감생활 속에서 얻게 된 것들, 그리고 또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날이 온다’ LP판의 주인공까지. 어느 것 하나 영화 같지 않은 것이 없는 이동석 선생님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Q. 선생님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라면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게 힘드셨어요? (이동석) 제가 재일교포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랐잖아요. 근데 어렸을 때, 내가 한국사람 그리고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스스.. 더보기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3일)부터 연구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이화영 소장님의 강의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관들을 방문하는 일정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7일)에는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직접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던 이동석 선생님이 직접 인턴 학생을 데리고 현장 견학을 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동석 선생님은 자신의 아픔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쉽게 넘길 수 있는 역사의 아픔들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신 이동석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리구요, 동시에 인턴 학생에게 정말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
[너무해도 너무합니다] [너무해도 너무합니다] 지난 2월, ‘재일동포 간첩사건’으로 사형을 받고 14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던 故 김병주 선생님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 재판을 직접 참관하고 저는 분노를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재판부의 선고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2021년 재심에서 징역 4년형이 인정되었을까요.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498598&code=61121111&cp=nv&fbclid=IwAR0FbrwwDmAaGJPFc22iESnKYZoli4GcGRD3-dF7livXws4O7gsWh8OmyEo 1984년 법정서 한 “예” 한마디에 발목… 재심서 징역 4년 1980.. 더보기
[이동석 선생 인터뷰-①] 프랑스에서 우연히 만난 ‘김치식당’. [인터뷰] 이동석 선생, 어학연수 중 프랑스에서 우연히 ‘김치식당’을 만나다. 지난 송기복 선생의 인터뷰에 이어 이번에는 재일동포 이동석 선생의 이야기이다. 이동석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로 1971년 모국 유학생 제도를 통해 한국에 왔다. 2년 후, 1973년 한국외대 불어과에 입학해 연극회 활동 등 모국에서의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1975년 11월 22일 보안사(현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하숙집을 들이닥치면서 행복했던 모국에서의 유학생활은 끝이 나게 된다. 1976년 당시 대법원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과 간첩죄를 인정해 이동석 선생에게 징역 5년형을 확정했다. 그렇게 끝이 날 것 같던 이동석 선생의 모국 유학은 2018년 새롭게 시작되었다.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 더보기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 김병진]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 김병진] 김병진 선생님은 1955년 고베에서 태어난 재일동포입니다. 당시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은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김병진 선생님은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에 김병진 선생님은 "재일동포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을 위해 국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최현배 선생의 학맥을 이어온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리던 모국에서의 유학생활. ​그러나 모국은 그를 환영해주기는커녕, 고문으로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1983년 갑자기 나타난 보안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수사관들에 의해 그는 강제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모국에서 그는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일본. ​청년 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