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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 - 함세웅신부님의 인터뷰기사(상)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 - 함세웅신부님의 인터뷰기사 (상)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상) 아버지, 불의에 맞설 용기를 주소서… 오늘도, 도시의 신부는 거리로 나선다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 더보기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이 화 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치료받지 못하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폭력적 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은 이들은 신체적 상해보다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고문이나 강간과 같은 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의 약 90% 이상에서 만성적 심리 이상을 결과한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 오게 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때문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폭력은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이나 가혹행위와 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었다. 구금시설이나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여성이나 아동과 같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지금도 높은 비율로.. 더보기
원풍모방 노동조합 박순애 전 부지부장 인터뷰 [인권클리닉 인터뷰] “내가 사회 발전의 주인공이라는 긍지가 있어요.” 원풍모방 노동조합 박순애 전 부지부장 인터뷰 1972년,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어떠한 단체행동도 허락되지 않던 살벌한 상황에서 원풍모방 노조는 어용노조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1970년대 민주노조 중에서도 ‘전설’로 불릴 만큼 활동적인 사회 참여와 노동자 투쟁을 전개했던 자타공인 최강의 노조였다. “내가 18살 때, 그러니까 72년에 한국모방에 들어가서 회사가 원풍모방으로 이름이 바뀌고 원풍 노조가 해체되던 82년까지 10년 있었으니까, 그 역사를 모두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박순애 선생님은 원풍모방 노조가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던 당시 부지부장을 지냈다. 최강의 노조였지만 '노동계 정화조치'라는 이름하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