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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가족워크샵] “국가폭력 속에 ‘가족’이 있다”

“국가폭력 속에 ‘가족’이 있다”

 

지난 11월 2일,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치유기념센터는 1박 2일의 일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 가족을 위한 워크샵을 가졌다. 이번 워크샵은 작년부터 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국가폭력 피해자 가족의 삶에 대한 심층인터뷰’ 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사업은 지금까지 국가폭력에 접근할 때 피해 당사자에만 국한했던 한계를 넘어 국가폭력이 실질적으로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이번 1박 2일 가족 워크샵에 함께 한 6명의 가족들은 지난 심층인터뷰에도 참여했었다. 6명의 가족을 비롯해 송지원 심리상담사와 3명의 연구소 직원들이 참여했다.

<사진-1> 워크샵에 참여한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윤혜경, 이정선, 박인순, 김옥섭, 문종숙, 김희유. 존칭 생략)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국가의 존립이라는 기치 하에 시민을 향한 잔인한 국가폭력이 난무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한국정치범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목요기도회에 참여하여 고문 사실을 알리며 고문 피해를 공론화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피해자 가족들은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이하 민가협)를 결성해 고문 피해 사례들을 자료집으로 만들고 사회 공론화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 가족을 위해 석방 운동을 참여하면서도 가족, 친척,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의 외면과 냉대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동시에 피해 당사자의 옥바라지는 물론 남아있는 자녀들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져야만 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지난 3, 40년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물론 우리 사회는 이들의 아픔과 노고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해부터 1970년대에서 1980년대 기간 중 불법구속, 고문, 투옥 등 국가폭력을 경험하고, 형사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거나, 또는 2기 과거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국가폭력 피해자(특히 간첩조작사건) 가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들의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

 

<사진-2> 심층인터뷰에 참여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의 한 장면이다.

 

이렇게 진행된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국가폭력 피해자 가족은 총 17명이었다. 이들은 전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배우자가 11명, 자녀가 6명이었다. 이번 워크샵은 이렇게 심층인터뷰에 참여했던 분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의미와 목적이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나는 국가폭력 피해자 가족의 삶에서 발견되는 트라우마를 발견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선생님들께서 스스로의 삶에 행복을 꿈꾸고 찾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다.

11월 2일 오전 10시 30분, 인권의학연구소에 모여 다 같이 경기도 가평으로 출발했다. 이번 워크샵을 기획한 인권의학연구소는 워크샵이긴 하지만 가족들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서로 웃음꽃을 피우며 출발해 먼저 양평에 거주하고 있는 박인순 선생을 모시고 청평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가족들은 넓은 테이블에 모여 정갈한 해물버섯전골과 갈치조림과 담소를 밑반찬으로 기분 좋게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북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특히 이날은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의 전형적인 가을날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곁에 두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웃음꽃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구소는 이렇게 이분들이 1박 2일의 시간동안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일정들을 준비했었다.

 

<사진-3> 첫째날 점심을 먹고 북한강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다.


즐거운 티타임을 끝내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워크샵이 진행되는 숙소에 도착해 4시부터 2시간 동안 ‘마음 돌봄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송지원 심리상담사의 강의로 오랜 시간 피해자 가족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트라우마와 여러 어려움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들을 견뎌냈던 가족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강의의 형태로 진행이 되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무르익어갔다.

<사진-4> 송지원 심리상담사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마음 돌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보다 오래 지속된 마음 돌봄의 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식사는 연구소 직원들이 가족들을 위해 숙소에 마련된 바비큐 장비로 저녁을 대접하고자 했으나, 모두 함께 손을 보태어 식사를 준비했다. 특히, 여수에 거주하고 있는 한 분의 가족이 오늘을 위해 광어를 가지고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싱싱하고 큼직한 광어는 10명이 먹기에도 충분했다. 광어를 여수에서부터 가지고 오신 선생은 직접 광어를 손질하셔서 회를 떴으며, 이후에는 매운탕까지 손수 대접했다. 이에 저녁식사는 바비큐와 광어회, 매운탕 등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모두 한 상에 둘러앉아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보냈다. 다 함께 정리를 마친 뒤에도 7시부터 시작된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이어져 새벽까지 끊이질 않았다.

<사진-5> 김희유 선생이 여수에서 직접 가지고 온 광어를 손질하고 있다. 그리고 다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

한옥을 개조한 숙소에서 맞이한 아침은 어젯밤의 피곤을 잊게 해 주었다.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숙소를 떠나기 전, 워크샵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은 송지원 심리상담사와 이화영 소장이 함께 준비하였으며, 지난 3-4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국가폭력 가족으로 살아오며 꿋꿋하게 견딘 스스로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어려워했으나, 한 글자 한 글자 젊었던 자신에게 위로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자신의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를 읽으며, 지난날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애썼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서로 눈물을 흘렸고, 서로는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따뜻한 위로로 워크샵의 마무리 평가 시간이 채워졌다.

<사진-6> 둘째날 아침 마무리 평가회를 가지고 서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하루를 즐겁고 평안히 보낸 숙소를 떠나 다 함께 가평에 자리한 아침고요 수목원으로 향했다. 가을의 끝자락,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자리한 수목원에서 고즈넉한 풍경을 함께 거닐며 즐거운 순간을 기억했다. 서로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새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앞으로 매 순간 행복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수목원 구경을 끝내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델씨엘로’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워크샵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사진-7> 둘째날, 가평에 위치한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환한 얼굴로 즐거운 순간을 가지고 있다.

워크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마무리하며 그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여행’이라는 단어와 함께 몇 자 더 기록한다. ‘여행’. 이번 워크샵이 단지 연구소에서 주최하고 주도하는 행사가 아니라 국가폭력 피해자 가족과 함께 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여정이자 동행이었길 기대한다. 삶은 스스로가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은 그간에 겪어온 경험에 따라 다르기 일쑤다.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설사 같은 것을 경험했을지라도 저마다 그 경험이 현저히 다르기에 서로 간에 이해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탓에 내가 아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고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1박 2일 동안의 짧은 여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헤아리는 모습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는 모습들, 서로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삶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동행인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연구소 소식을 보아주시는 여러분들도 앞으로의 지난한 삶의 노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꿈꾸며 함께 거니는 길벗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