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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창남의걷기

높은 오름에서...

높은 오름에서 만나다 

 

 

생각해 보니 불과 며칠 전인데
어쩌면 이렇게 아득한 옛 일 같지요..?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꼭 전생의 일을 생각해 내듯 아스라하기만 하네요.
며칠 전 일인데 이리도 멀리 느껴지다니 그것도 참 신기하네요.

높은 오름, 그 하늘가에 서 있던 날 말이에요.

젊은 날에 대한 기억은 더 신기해요.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기 까지 하네요.
수십 년 전 일들인데도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잖아요.
아직도 젊었을 때의 느낌과 설렘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말이에요.
그 싱그러웠던 젊은 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지요.

그 젊은 날,
이데올로기 차고 넘치고 광풍처럼 몰아쳐
사람보다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시 여겨지던 날들이 있었지요.
그런 풍토가 있었어요.
마치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해결이라도 해 줄 것처럼 말이에요.
저도 그 한가운데 있었지요.
이데올로기를 선택하고 함께 하였지요.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만큼 저를 힘들게 한 것도 없었지요.
적들과 싸우는 것 보다 이러한 경향성들과 싸우는 것이 훨씬 힘들었지요.
매 순간 이러한 경향성과 싸워야 했지요.
사람 보다 더 중요한 이데올로기는 없으니 말이에요.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이데올로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에요.

그런 이데올로기 따위 버린지 오래 되었지요.
개에게도 줄 수 없는 아무런 가치 없는 것들이지요.
죽어버린 이데올로기들이지요.
하지만 2013년 오늘도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신주처럼 믿고 있는 이들이 있기는 하네요.
진보든 보수든 말이에요.
지금도 이런 것을 당당히 주장하고 또 함께 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이들이 있네요.

전 이런 이데올로기 따위 버린지 오래 되었지요.

이것도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이 제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어요.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말이에요.
사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까요?
제 이데올로기는 자연이에요.
나무이고 풀이에요.

얼마 전 이학도 출신의 옛 벗이
풀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느냐고 따지듯 묻더군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는 정도의 의미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제 이데올로기를 굳이 말하라면
풀이라고 말하겠어요.
생명 그 자체가 제 이데올로기에요.

전 사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말만큼 생명을 많이 죽인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엄청 좋아하는 분들은
이 말만큼 생명들을 많이 살린 말도 없다고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한다면 울고 싶을 거에요.

젊은 날과 지금의 차이만큼 세월이 흘렀지요.
적지 않은 날들이에요.
수십 년이 흐른 거에요.
수십년 전의 일을 어제처럼 느끼든
며칠 전의 일을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게 느끼든
세월은 시간의 흐름만큼 흘렀어요.
많은 것들이 변했지요.
물론 저도 변했고요.

생명을 살리고 지키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길이 있겠지요.
걷다 보면 만나겠지요.

산길을 걸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이에요.
우거진 숲과 굽이치는 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길이 맞을까.
올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늘 이렇게 마음 속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산길이지요.
하지만 늘 길은
숲 너머 산 너머로 이어져 있지요.

숲 안에 숲이 있고
산 너머에 산이 있듯이
길 밖에 길이 있고
삶 안에 또 다른 삶이 있겠지요.

그 길을 따라
이제 걸어봐야 겠어요.
조금 외롭더라도 말이에요.
하기야 살아오는 날들 동안
늘 외로웠으니
사실 외로운 것은 별 문제도 아니지요.
그래도 함께 걸을 이들이 있으면 좋지요.
외롭지도 않고.

하늘가에 섰던 날이 정말 그리워요.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 있겠지요.
마음 안에 또 다른 마음 있듯이요.

아직은 그리워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아직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참 좋아요.

늘 오늘이라는 새날들이 와 있네요. 
새로운 숨결로 말이에요.

새롭게 살아가라고 말이에요.

 

 

 

  

 

 

 

                                                                     높은 오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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