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간첩조작과 고문, 국가폭력은 ‘가정’을 찢어놓았다.
가정의 달의 ‘가정’에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요, 둘째는 ‘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를 일컫는다. 가정은 가족과 유의어이지만,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나타내는 가족보다 더 큰 의미로 쓰였으리라. 오늘날 핵가족화된 가정과는 달리 과거 가정은 친인척을 아우른 공동체를 의미하지 않았을까? 가정의 해체와 축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국가폭력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친지간에 화목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일본에 사는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대신한 故 김두홍 씨에게 고마움을 느낀 그의 큰어머니가 초대한 일본 관광이 간첩조작의 덫이 되었다. 방문한 그 집 아들 중 하나가 조총련 소속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고문으로 인한 악몽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고 잠에 들기 위해서는 연거푸 술을 마셔야만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고문 후 모든 것이 무서운 것이 되었고, 무서운 것으로 보여 무서워하는 것이 병이 되었다.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故 김두홍 씨의 이야기이다.
故 김두홍 씨의 아내 고정일 씨는 고문 후 완전히 변해버린 남편과 한 평생을 살며, 7남매를 억척스럽게 길러냈다. 남편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숨는가 하면, 마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살아있는 동안 무서워했고 두려워했으며 기행을 반복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버릴 수 없었기에 애꿎은 며느리를 나무랐고, 고정일 씨는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힘든 나날을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故 김두홍 씨를 밀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故 김두홍 씨의 집안과 사돈 관계로, 그를 초대한 큰어머니의 며느리 되는 이였다. 故 김두홍 씨가 일본 관광을 다녀온 것에 샘이 나, 그것을 경찰인 친오빠에게 알리고, 경찰인 친오빠가 이를 밀고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故 김두홍 씨와 가족들의 삶은 풍비박산이 났다. 제사를 앞둔 어느 날 故 김두홍 씨는 부엌의 솥을 모두 엎어내며 제사 따위를 해 무엇을 하냐고 성을 냈다고 한다. 만약 故 김두홍 씨가 자기 가족만을 생각해 큰집 제사나 성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면 어땠을까?
단순히 치기 어린 질투에 의한 밀고도 간첩조작사건으로 만들어내는 시대에 사람들은 제 식구만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친지간에 호의와 선의가 언제 국가폭력의 악의로 뒤덮여 삶을 덮칠 줄 모르기에, 남들은 염려치 않고 오직 제 자신과 식구만을 챙겨야 하지 않았을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재차 가정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사진 및 기사 출처 : 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13335, 제주의소리)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0) | 2023.05.04 |
---|---|
[단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가 되었다 (0) | 2023.05.03 |
[단상] 고문피해자와 가족에게도 따뜻한 5월이길 바라며 (0) | 2023.05.01 |
[단상] 최초의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추모하며 (0) | 2023.04.26 |
[단상] 그들에게 간첩조작의 대상은 승진의 지름길에 불과했다 (0) | 2023.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