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미 국방부 소속 인권 변호인단, 연구소를 방문하다.
지난 17일(금), 미 국방부 소속 인권 변호인단이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을 방문했다. 이 변호인단은 2명의 인권변호사(Human Rights Counsel)와 1명의 조사관(Investigator), 그리고 통역관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현재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인권피해자들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박민중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장이 이들에게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활동을 안내했으며, 세 명의 인권피해자가 함께 참석해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치유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변호인단의 대표 변호사인 알카(Alka Pradhan)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인재근 의원과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의 보안관리소장을 만난 경험이 있다. 알카에 따르면, 이 변호인단의 주된 법률 의뢰인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수감자들이며 이들 대부분 신체적·정신적 재활치료가 시급한 고문 피해자들이라고 밝혔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을 방문해 과거 한국에서 발생했던 고문과 이로 인한 고문피해자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연구소가 어떠한 활동들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고 했다.
먼저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수용소는 2001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부시 행정부가 쿠바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미 해군기지에 만든 수용시설이다. 21세기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이 수용소는 주로 중동지역에서 미국정부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을 체포 동의 등 적법한 절차 없이 불법으로 구금했다. 불법 구금 후, 구타, 물고문, 수면 박탈 등 ‘고문’ 수사가 자행되었다. 이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십 년 수감되어 있다가 풀려난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게 불법구금과 고문 수사 후,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은 민간 법정이 아닌 미 정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2021년까지 누적 수감자 수는 770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17일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을 방문한 변호인단은 이 군사법원에서 관타나모 수용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인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변호인단은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이 과거 1970-80년대 국가에 의한 고문피해자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활동들은 무엇인지 알고자 연구소를 방문한 것이다. 이에 박민중 사무국장은 1층 상담실과 소강당을 보여주며 치유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은 여타 트라우마센터와 달리 비영리민간단체로서 정부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치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제정과 일반 시민 대상의 사회적 공론화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연구소는 인권피해자와 고문피해자를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객체로만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치유프로그램을 받은 후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다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주체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021년 출범한 국가폭력 생존자회의 배경과 의미를 전달했다.
약 30분 간의 대화 후, 회의실에서 변호인단과 세 명의 인권피해자가 함께 대화를 가졌다. 먼저,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이자 고문피해자인 박순희 선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70년대 독재정부 시절,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국가폭력을 경험하였으며,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 수사관들에 의해 받은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인해 여전히 검은색 세단을 보면 심장이 뛰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전해주었다. 이러한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권의학연구소를 통해 사건 발생 후 약 40여 년만에 개인 상담을 받았으며, 이후 당시 같은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서로 연대와 결속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이동석 선생이 뒤를 이었다. 이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20대가 되던 1970년대 모국을 찾았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꿈에 그리던 모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독재 정부는 당시 데탕트의 국제정치적 상황과 정당성이 없는 정부라는 국내정치적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이동석 선생은 그 희생양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동석 선생은 변호인단에게 그동안 어떤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난민 등 40여 년 전 자신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일본 관련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김장호 선생이었다. 김장호 선생은 박순희, 이동석 선생은 물론 자신과 같은 고문피해자가 발생했던 우리 사회의 시대적 배경을 강조하였다.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힘없는 개인들이 당할 수 있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 구조적 폭력은 과거 고문과 수감생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되돌아와서도 지속되는 무서운 폭력이며, 이 과정에서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은 피해자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장호 선생은 최근 연구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문피해자 가족의 삶을 아픔을 말하면서 우리 사회가 단순히 고문피해자에게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실질적인 도움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 국방부 소속 인권 변호인단의 연구소 방문은 약 2시간 동안 이어졌다. 변호인단의 대표 변호사는 세 명의 피해자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으며, 다니엘 법무관은 연구소의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록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변호인단과 세 명의 피해자들은 서로 통역으로 대화를 해야 했지만, 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박순희, 이동석, 김장호 선생과 같은 고문피해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2021년 예멘 출신으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14년 동안 구금되었다가 현재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추방된 만수르 아데피는 회고록 '여기 우리를 잊지 마세요(Don't forget us here)'를 출간했다.
14년 동안의 지옥 같은 삶 이후, 그는 현재 세르바에서의 삶을 ‘관타나모 2.0’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이 세 분의 피해자가 겪었던 것과 동일했다. 아데피는 그 도시에서 고립된 채 제한된 삶을 살고 있었다.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으며, 사람을 사귀려 해도 경찰이 그 사람들을 찾아갔고, 직장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경찰의 감시는 이어졌다. 현재 그의 삶은 규모가 더 큰 관타나모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 같은 일들은 세 명의 피해자가 경험했던 일들이며,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은 이 같은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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