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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특집] 서대문형무소, 그곳에는 그들도 있었다.

[특집] 서대문형무소, 그곳에는 그들도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은 3.1절이었다. 3.1절을 맞이하여 많은 이들이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하였을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지어진 감옥이었다. 1908년 경성감옥,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 수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광복 이전에는 일제에 항거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고, 광복 이후에는 독재에 항거한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갇힌 곳이었다. 1908년에 연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 11월에 이르러서야,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며 감옥으로써의 용도를 마친다. 이후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며, 독립과 민주화의 역사와 이에 기꺼이 몸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사진1.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부 전경>

 

그런데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뿐만이 아닌 그들도 그곳에 있었다. 1975년 11월 22일 유신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국내에 잠입, 암약해 오던 북괴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하였다.”고 언론에 발표한다. 이름하야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어 모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이들은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모국에 돌아와 수학하였을 뿐이었다.

불법구금과 고문 끝에 간첩으로 내몰린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오랜 수감 세월의 고초 끝에 간첩이란 꼬리표를 달고 내쫓기듯 출소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재심 청구 끝에 무죄를 밝혀냈다. 결국 1975년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은 40여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국가가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간첩조작사건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그들이 사회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달픔이 있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지난 달,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중 일인인 김원중 치바상과대학 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사쿠라이 이즈미 기자의 요청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관한 사진을 인권의학연구소에 부탁하였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김원중 교수에게 기사에 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사진을 보내었다. 아사히신문은 재일 한국인 양심수 관련 기사를 연재하며 2월 10일자 석간에,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이철 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사진 2. 아사히신문 2월 10일자 보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선고 받고 1988년에 석방된 이철 선생은 십수 년이란 시간이 흘러 감옥에서 역사관으로 바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방문하였다. 한 선생이 아이들에게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설명하였는데, 재일동포 유학생에 대해서는 어떠한 얘기도 없었다. 이철 선생은 자신이 겪었던 수난을 토로하듯 얘기하곤, 이야기가 길어진 것에 사과하였다.

이날의 경험으로 이철 선생은 자신을 비롯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역사와 피해자가 모국에서 잊히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했다. 이철 선생은 같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강종헌, 유영수 선생과 함께, 인권의학연구소와 그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이석태 변호사, 故 박형규 목사에게 재일동포 양심수들을 위해 서대문형무소에 작은 비석이라도 두기를 바란다며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당시 1년여 간 서대문구청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냈으나, 순조로이 진행되지 못한 채 1년 간 난항을 겪었다. 그 이유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부지는 서대문구청이, 역사관의 관리는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내 기념비 건립에 관해서는 문화재청의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16일,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 개소 2주년 및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행사 후 다음 날, 이철 선생을 비롯해 인권의학연구소는 당시 서대문구청장인 문석진 구청장과 기념비 건립에 관한 면담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시설 중 당시 피의자들을 수감했던 감옥인 11옥사 3번방에 전시실을 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인권의학연구소와 서대문구청은 업무협약을 체결해 수차례 회의를 가졌다. 서대문구청은 전시실 설치에 700만원을, 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이철, 김원중 선생은 각각 100만엔을 지원하였다. 그렇게 2016년 8월 14일, ‘서대문 독립민주축제’ 공식행사에 맞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1옥사 3번방에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작은 전시실, ‘재일동포 양심수 고난과 희망의 길’이 마련된다.

<사진 3. 11옥사 3번방, ‘재일동포 양심수 고난과 희망의 길’ 전시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노고를 기억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는 조국의 말과 얼을 깨치기 위해 수학하러 온 재일동포 유학생들과, 국가폭력과 간첩조작에 깨지고 짓밟힌 그들의 꿈과 열망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다 더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사진 4. 전시실 내부 기념비에 간첩조작 피해자들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2016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1옥사 3번방 ‘재일동포 양심수 고난과 희망의 길’에 관한 책자를 작성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매주 일요일 오전 현장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 분은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보안 관리소장이다.

<사진 5. ‘재일동포 양심수 고난과 희망의 길’ 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