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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특집] 열세 살 여공과 국제 여성의 날

[특집] 열세 살 여공과 국제 여성의 날

 

오늘은 국제 여성의 날입니다.

‘국제 여성의 날’은 시간을 거슬러 1908년 미국의 섬유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의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근로여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로부터 기원합니다. 이후 국제연합은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하여 ‘국제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진 1. 미국 섬유 여성노동자들의 시위>

 

1908년의 미국 섬유 여성노동자들의 궐기와 시위로부터 약 70여년 후, 대한민국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연대와 참여가 있었습니다. 이를 대표하는 사건 중 하나가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사수투쟁’이었습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섬유·의류 산업은 명실공히 여성 노동자들이 떠받쳐온 산업이었습니다.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자 2만 6800명 중 85.9%가 14~24세 여성이었고, 그중 절반이 18세 미만이었습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소녀들은 남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12~14세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취업해 하루에 13~14시간씩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이들은 이름 대신에 자신에게 배정된 미싱 기계의 번호로 불리었고, 이들에게 너무나도 흔히 욕설과 구타가 행해졌습니다. 이들은 한 사람의 여성노동자가 아닌 ‘시다’ 또는 ‘공순이’로 함부로 얕잡아 불리었습니다. 이러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배움의 손길도 없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근로 개선을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 후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됩니다. 청계피복노조는 1973년 노동교실을 설립하여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사업자들과 정부당국의 압제 속에서도 저항을 통해 노동교실을 유지해왔으나, 77년 9월 9일 노동교실 반환 등을 요구하는 청계피복노조의 농성에 경찰은 폭력을 동반한 강경진압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날 경찰은 53명을 연행하였고 5명을 구속하고 9명을 즉결심판에 넘겼습니다. 이들은 구속, 수사, 투옥, 해직 등 국가에 의한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사진 2.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속 신순애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 3.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좌), 에세이 <열세 살 여공의 삶>>


5명의 조합원 중에는 신순애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13살의 어린 나이로 1966년부터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미싱 시다’로 일하였습니다. 그는 1974년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을 다니며 배움을 통해 단단하고 당당한 여성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로서 거듭났습니다. 신순애 선생은 1977년 노동교실이 폐쇄된 뒤에도 자비로 방을 구하고 선생을 자처하며 노동자들에게 자신이 받았던 배움의 기회를 나눴습니다. 또한 노동 조건 개선과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노동운동을 지속해나갔습니다. 1981년 1월 신군부에 의해 청계피복노조가 강제 해산되자 이를 위한 항의 투쟁을 준비하다 주동자로 몰려 2년 넘게 수배생활을 했으며, 이후 취업이 제한되었고 경찰의 감시로 인해 혼인 후 2년 동안 18번이나 이사를 다니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2021년 7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이 같은 노력과 희생에 대해 국가는 민사 배상을 했으며, 신순애 선생은 배상금 전액을 인권의학연구소의 장학사업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지난 3월 4일 인권의학연구소는 2기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습니다.

<사진 4. 인권의학연구소 2기 장학금 수여식>


신순애 선생이 노동교실을 다니며 배우고 익힌 것 중 하나는 동료 노동자들이 서로를 미싱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불림으로써,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대우하고 대우받은 것이었습니다. 사업자와 정부당국의 국가폭력과 압제 속에서도 노동교실를 비롯한 노동운동을 통해, 신순애 선생을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신장하였습니다.

신순애 선생은 국가로부터 폭력의 피해를 받은 당사자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선생이 노동교실과 노동운동을 통해 여성이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았듯, 장학생들도 배움을 통해 스스로의 권익을 찾길 바란 것입니다.

1908년 미국의 섬유 여성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한 권익신장 운동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로부터 약 70여년 후 청계피복노도종합 노동자들은 노동교실을 비롯한 노동운동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위해 힘썼습니다. 오늘날 그러한 참여와 연대의 정신과 유산은 계속해서 이어져 노동운동,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의 피해 당사자와 그 자손에게 배움의 기회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여성노동자들의 연대와 참여로 시작한 ‘국제 여성의 날’, 참여와 연대는 더욱 크고 넓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진 5. 신순애 선생님과 인권의학연구소 2기 장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