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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창남의걷기

안도현 - 그의 절필 선언에 대한 짧은 소회

얼마 전 안도현 시인이 절필 선언을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

나는 시인의 절필 선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절필 선언은 지극히 작가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이다.
절필 선언도 하나의 표현이고 글일 수 있다.
하여, 그의 시와 글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시간 고민하고 내렸을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이번 결정에서 기개를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유약함이 느껴진다.
너무 정치적이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받는다. 


그 동안 오직 시로만 말하던 시인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했다.
선거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 그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에서는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고 발표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시인의 절필 선언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결기를 가지고 기개 있게 말한 것 같은데도
기개도, 결기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허망하게 느껴진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80년대 중반 어느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었지만
80년대 초중반 쏟아져 나온
민족문학, 노동문학, 노동해방문학 등의 관점에 서 있던
후배 평론가들로부터 문제제기 등을 제법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로 아파하고 상처 입었다.
또 자신의 문학을 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힘들어 했다.
여러해 후 그는 절필을 선언했다.
나는 그의 절필 선언에 그가 80년대 중후반을 지내며 겪고 입었던
아픔, 상처, 반성들이 주요한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그의 절필 선언은 무게 있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안도현 시인의 절필 선언은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절필선언은 작가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할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달 초 정도 였을것 같다.
저녁 어스름 내릴 때 즈음
강진의 어느 포구에 간 적이 있다.

어둠 내리니
불빛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어둠 깊어지고 있었지만
불빛 하나만으로도 바라봐야 할 것들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나는 시인이란 무릇
그 불빛 같아야 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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