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2022년 민주현장체험 교육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 키워드로 살펴본 민주현장체험 -
지난 6월 29일(수), (사)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도서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2022년 민주현장체험]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다. 5월 25일 도봉구에 위치한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 시작한 이번 프로그램은 약 한 달 동안 매주 이론교육과 현장교육을 병행하며 진행되었다. 매주 교육주제에 부합하는 강사가 이론교육과 현장교육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민주화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분들이다.
첫 번째 강사였던 유동우 선생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화에 대한 이론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서대문형무소(1주차)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4주차) 현장 해설을 진행했다. 두 번째 강사였던 이숙희 선생은 청년 전태일을 중심으로 1970년대 노동운동의 태동과 노동운동의 변천사에 대한 이론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전태일기념관에서 현장 해설을 담당했다. 세 번째 강사인 이명준 선생은 1987년 6.29 선언이라는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일련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론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성공회 성당과 명동성당에서 현장 해설을 담당했다. (명동성당에 대한 현장 해설은 기춘 선생이 함께 동행해서 진행했다.)
#첫 번째 키워드: 독립, 민주 그리고 국가폭력
첫 번째 교육 키워드는 ‘독립, 민주, 그리고 국가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의 보안 관리소장이자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세대에게는 필독서였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저자인 유동우 선생은 한반도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강의를 담당했다. 특히, 이론교육 후 현장교육이 진행되는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서대문형무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독립’과 ‘민주’라는 키워드가 모두 내재화되어 있으며, 일반 시민들이 단순히 독립이라는 키워드만을 가지고 접근하는 문제점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수요일의 이론 교육 후 수강생들은 첫 번째 현장교육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에서 유동우 선생은 이론교육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서대문형무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독립, 민주, 그리고 국가폭력의 역사를 풀어냈다. 1908년 10월,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1987년 11월 폐쇄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민주투사들을 탄압했던 이 공간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유동우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들을 녹여내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키워드: 전태일과 노동
두 번째 교육 키워드는 ‘전태일과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청계피복의 여성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으며, 현재는 전태일재단의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숙희 선생의 이론교육은 1960년대 후반 한국의 노동현장의 현실을 알려주면서 시작되었다. 1970년 청년 전태일의 분신 당시 청계피복의 여성노동자였던 이숙희 선생은 그 사건의 진실을 1년이 지나도록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와 사측은 청년 전태일의 죽음이 노동자들을 각성하고, 이는 곧 자신들의 이권에 부정적 영향을 야기할까봐 어떻게든 청년 전태일의 죽음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 1주기 행사에서 이숙희 선생은 전태일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 이후 청년 전태일이 꿈꾸었던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숙희 선생은 청년 전태일의 삶과 한국 사회의 노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의를 이어나갔다. 이론교육 후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현장교육은 당시 전태일, 이소선 여사의 다양한 유품들을 보며 몰입감 있는 교육이 되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1972년 청계피복의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 1975년까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웠던 이숙희 선생의 당시 노동현장도 엿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은 너무도 당연해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했던 10대 이숙희 선생과 같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헌신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태일기념관을 나와 청계천을 따라 전태일 다리, 그리고 1960년대 전태일이 자주 갔던 다방에 모두 가서 쌍화차를 마시며 두 번째 현장교육은 마무리되었다.
#세 번째 키워드: 민주화 과정과 6.29 선언
세 번째 교육 키워드는 ‘민주화 과정과 6.29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4인 실무기획팀으로 민주헌법쟁위국민운동본부 결성에 참여했던 이명준 선생은 1980년대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위한 청년들의 노력이 무엇이었는지를 교육했다. 1970년대 박정희와 1980년대 전두환의 독재 시절 청년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교과서에는 수록되지 않은 노력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해주었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이 삼선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계획했을 때부터 꾸준히 저항했던 이명준 선생은 1980년대 지속적으로 민통련 청년위원장,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를 역임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입감 있는 강의가 이어졌다.
지금은 1987년 6.29 선언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보면 이는 단결된 시민들의 엄청난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1987년 6월 29일의 승리는 당시 성공회 성당과 명동성당이라는 장소를 빼놓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이에 이명준 선생과 기춘 선생은 당시 6.29 선언이 발표되는 약 2-3주일의 긴박한 시간 동안 성공회 성당부터 명동성당까지 어떠한 발자취들이 숨겨져 있는지 현장교육을 이어갔다. 당시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명동성당의 뜰에서 다시 한번 당시의 감격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3주 동안 이론교육과 현장교육이 병행된 민주현장체험은 마지막 현장교육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의 현장교육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마지막 현장교육은 유동우 선생이 담당해주었다. 총 4곳의 현장교육을 끝으로 마무리된 민주현장체험은 공교롭게도 6월 29일 참여자들의 발표를 끝으로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한 달 동안 3회의 이론교육, 4회의 현장교육을 들으며 자신이 현장교육을 담당하고 싶은 곳을 정해 6월 29일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참여자들 중 총 6명이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해설사 자격을 수여받았다.
2022년 처음으로 진행된 민주현장체험은 (사)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주관한 첫 번째 사업이다. 앞으로도 두 기관은 다양한 예술·문화·교육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인권 및 민주주의 향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특히,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해 잊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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