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행사] 고문피해자 지원을, 고문가해자 처벌을!
지난 6월 27일 월요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과 (사)인권의학연구소가 주최하는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이며, 2022년은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 9주년이기도 하다.
이 행사의 슬로건은 “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였으며, 핵심 메시지는 “고문피해자 지원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고문가해자 처벌은 고문방지를 위한 최선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 해야 합니다.”였다. 국회와 우리 사회에 이 같은 메시지를 호소하기 위해 이날 행사에 함세웅 이사장과 인재근 의원을 비롯해 약 130여 명이 넘는 분들이 참석했다. 특히, 많은 고문피해 생존자들과 가족이 참석해 이 행사의 의미는 물론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날 행사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해 약 2시간 동안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다양한 보고들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고문피해자 가족의 삶과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담은 영상이었다. 이 영상에는 7명의 고문피해자 가족의 아내와 자녀가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고문피해자 가족, 특히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고문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등한시했다. 우리와 국가는 이들에게 사과는커녕 이들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이 영상을 통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처절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이날 방영된 동영상 가운데 한 증언자(고문피해자 부인)는 대한민국에서 간첩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제일 아픈 게 자식이더라고요. 또 내가 사는 것도 힘들었고. 대한민국에서 간첩의 가족으로 산다는 건
‘공포, 절망, 외로움’. 딱 세 가지로 다 함축되었어요. 진짜 무섭고, 막 두렵고, 희망도 없고. 세상에 던져져서
애들과 먹고살기 위해 이 현실을 부딪혀 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외면했던 고문피해자 가족의 삶을 들으며 이번 행사의 핵심 메시지였던 ‘고문 피해자 지원’과 ‘고문 가해자 처벌’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에 인재근 의원실의 한성희 보좌관이 지난 2012년부터 발의되었으나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에 대한 경과보고를 했고, 민변 과거사위원회의 김성주 변호사가 지난 2018년부터 소송을 시작해 작년 11월에 승소한 부적절한 고문가해자 서훈 취소 관련 행정소송의 경과보고를 이어갔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중요했던 부분은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정보공개이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1960, 70, 80년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치안본부(현 경찰청), 보안사령부(현 국방부)에 재직하면서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고문하고 하루아침에 간첩을 만들었던 공무원들의 실명과 당시 직급을 발표했다. 무고한 국민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한 결과, 국가로부터 훈·포상을 받았던 50여 명의 고문가해자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는 2021년 11월 (사)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3년 여에 걸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결과로 얻은 값진 성과였다. 이화영 소장은 이들의 이름과 당시 직급 등을 발표하면서 “고문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 치유의 첫걸음”이며, “앞으로 인권의학연구소는 고문 가해자의 거짓 공적행위와 수사관의 이름을 밝혀 다시는 이 땅에 비인간적인 고문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밝혔다.
고문가해자 정보 공개 후 고문피해자인 김양기, 박순희 선생이 단상에 올랐다. 김양기, 박순희 선생은 이 자리에 참석한 130여 명과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고문피해자를 대표해 결의문을 낭독했다.
1980년대 보안사에 의한 고문피해자인 김양기 선생은 “고문방지 4법이 발의된 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 묻는다. ‘이게 나라냐!’”라며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고문방지 4법안의 통과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하며 중앙정보부에 의한 고문피해자인 박순희 선생은 “오늘 우리가 모인 국회 이 자리에 고문피해자와 그 가족이 있는 한 고문과 국가폭력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며 고문피해자 지원과 고문가해자 처벌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결의문 낭독으로 1부 행사는 마무리가 되었고, 2부 치유마당의 첫 번째 순서로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지난 201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이성희 선생을 시작으로 매년 이어지고 있는 이 감사패 증정은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해야 하며 감사를 표해야 할 분들에게 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증정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2022년 올해는 1970년대 청계피복 노동자이며,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한 신순애·박재익 선생에게 전달했다. 특히 2021년 7월, 이 부부는 (사)인권의학연구소에 10년에 걸친 국가와의 소송 끝에 국가로부터 받은 민사 배상금 전액을 기부하면서 인권의학연구소의 장학사업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장학기금을 기부하면서 신순애·박재익 선생은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의 자손들이 부모와 조부모의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그 2, 3세대에게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기부 지향을 밝혔다. 이에 이번 2022년 감사패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동운동 동지이자 가족인 신순애 , 선생에게 전달하였다.
이번 행사의 2부 치유마당은 고문생존자와 가족들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공연은 노래 마당과 타악기 공연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공연을 위해 고문생존자와 가족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인권의학연구소에 모여 지난 3개월간 연습을 했다. 이 연습 자체가 하나의 치유 과정으로서, 매 시간마다 고문피해 생존자와 가족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먼저, 노래마당에서는 독창과 합창이 이어졌다. 4곡의 노래를 준비하였는데, 고문생존자들은 공연을 시작하기 전 이 곡들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영상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한 후, 노래를 들려주었다. 특히, 마지막 곡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참석했던 관객들도 모두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합창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노래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바로 타악기 공연이 이어졌다. 잼베, 카혼 등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한 악기를 들고 단상에 오른 고문생존자와 가족들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흔들리지 않게’ 곡에 맞춰 흥겨운 공연을 보여주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박자를 맞추고, 실수가 있으면 서로 웃으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A씨는 “고문생존자이면서 동시에 80대 후반의 선생님이 노래를 프로 못지않게 잘 불러 주셔서 감탄했습니다. 노인도 열성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번 행사를 준비했던 고문생존자들에 따르면, 모두가 함께 슬픔을 토해내고 우리가 기억에 남는 노래를 직접 감정을 담아 노래했다는 점이 뜻깊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40여분 동안 진행된 치유마당을 통해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고문생존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문생존자와 가족의 타악기 공연으로 "2022년 국제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는 마무리되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번 행사를 통해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문피해자가 과거 고문 트라우마의 재경험으로부터 치유되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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