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환영하는 국가기관의 사과, 그러나 ....
1970-80년대 억압적 권위주의 정권에서 국가권력기관들은 앞다투어 조작간첩을 양산했다. 그 대표적인 기관들이 바로 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안지사), 그리고 치안본부(현 경찰청)다. 이들은 당시 각각 고문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고문했다. 그리고 그 고문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을 해야만 했다.
현재 남영동에 위치한 민주인권기념관이 과거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운영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곳에서 고문을 받았던 대표적인 피해자가 故 박종철 열사와 故 김근태 의원이다. 그리고 이외에 수많은 청년들이 이곳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고문의 결과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첩사건들은 30-40년이 지나서야 모두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의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20일경,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의 징역형을 받았던 김 모 선생에게 인천 중부경찰서 안보과 소속 2명의 경찰관이 찾아왔다. 김 모 선생에 따르면, 2명의 경찰관이 집으로 와서 김 모 선생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인천 중부경찰서의 여러 경찰관 앞에서 과거 김 모 선생이 어떻게 치안본부에 의해 고문을 당했는지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김 모 선생은 경찰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절하고 식사 한 끼 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2주 후, 그 두 명의 경찰관은 A4 용지 1장짜리 서한문을 들고 그 식사자리에 왔다.
인천 중부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인천 중부경찰서는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경찰청으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 공문에 따라 피해자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 것이다. 또한, 이 공문은 올해 갑자기 경찰청에만 내려진 것이 아니다.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과거사 업무지원단 이행송무과의 서모 사무관에 따르면, 1기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산되고 그 업무를 이어받아서 처리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은 지난 2010년부터 진화위 결과에 의거해 분기마다 각 부처에 공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개인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 기관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한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늦었지만 과거 국가폭력을 저지른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과의 방식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할 경우, 그 사과가 아무리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할지라도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김 모 선생은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기 전까지 보안관찰법에 따라 출소하고 나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20일에 한 번씩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 자신의 이동상황을 보고해야 했으며, 지방에 거주할 때는 경찰들이 지방에 있는 집까지 찾아와서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이러한 경험은 트라우마로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김 모 선생 또한 처음 경찰서 안보과에서 자신을 찾아온다고 했을 때 마음이 이상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안보과의 경찰관이 김 모 선생에게 인천 중부경찰서의 여러 경찰관들 앞에서 과거 고문 경험을 들려줄 수 있냐는 제안은 사과가 아니라 오히려 2차 피해의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평생 동안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피해자에게 찾아와서 자신을 고문했던 후배 경찰들 앞에서 과거 자신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들려달라는 이야기는 매우 무례한 요구이자 명백한 2차 피해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경찰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고문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에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첫째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한 사과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과거 경험한 고문의 트라우마와 출소 후 보안관찰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피해자를 향한 사과는 더욱 피해자 관점에서 이루어졌어야 한다. 둘째는 현재 경찰청 이외의 국정원과 국방부는 이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이 지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공문을 보내고 잇따른 사법부의 재심 무죄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거 조작간첩을 가장 많이 만들었던 현 국정원과 국방부(안지사)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번 고문 피해자를 향한 경찰청의 사과는 늦었지만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앞으로 과거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던 국가기관들을 향해 세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사과는 행정편의적 또는 가해자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사과의 무게는 과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했던 무게에 상응해야 한다. 단순히 A4 용지 한 장의 서한문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셋째,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실(또는 감사원) 및 국방부는 앞으로 적극적으로 세 기관(경찰청, 국정원, 안지사)의 활동을 감시하고, 피해자 중심의 사과가 이루어지는지 철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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