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함주명, 92년간 ‘ ’ 삶을 살아냈고 바라냈다
함주명 선생이 4월 12일 작고하였다.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생존자였다.
92년간의 ‘ ’ 삶이었다.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1931년 1월 23일 개성 만월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개성은 북한의 치하가 되었다. 전쟁으로 그는 한 쪽 눈을 잃었고 가족과 헤어져 생이별하고 말았다. 가족을 그리워하던 그는 가족을 찾아 대남공작원에 자원하였고 월남하였다. 1954년 4월 14일 휴전선을 넘자마자 즉시 자수를 하였다. 미군 CIC를 거쳐 원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 결과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남공작원으로 ‘위장’해 남파하고, 남으로 오자마자 자수한 것이 인정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가족과의 재회 후, 과거의 이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삶에 훼방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삶을 일구며 보통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1983년 2월 18일, 그는 한 무리의 사내들에게 납치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영장 발부, 4월 4일까지 45일간 불법 감금되었으며, 검찰 송치, 4월 21일까지 63일에 걸쳐 고문을 받았다. 당시 고문수사관이 바로 ‘이근안’이었다.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하고 말았다. 검찰 송치 간에도 이근안의 협박이 이어졌다. 검사에게 허위자백이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나 검사는 이를 외면하였고, 검사는 법정에서 함주명 선생이 고문 사실을 주장하자 ‘교활성과 악성’을 드러낸다며 사형을 구형하였다. 당시 검사는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이며 끝끝내 사과를 거부했던 최병국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재판에 동석한 이근안은 고문 사실을 부인하며 위증하였다. 법원은 검찰과 이근안의 손을 들어주었고 함주명 선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1998년 8월 출소 전까지, 15년 6개월, 5,658일 수감생활이 이어졌다. 간첩의 식구로 손가락질 받고 고통 받을 가족을 생각하며 고문후유증으로 옥중 발병한 당뇨병, 간경화를 버텨내었다. 출소 후에도 ‘간첩’이라는 직·간접적 피해가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어졌다.
1999년 이근안이 자수하였고, 민변 소속의 변호사들은 이근안을 ‘불법감금, 독직폭행, 위증’ 혐의로 고발하였다. 서울지검은 이근안의 고문수사와 위증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인정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검찰은 이근안을 불기소 처분하였다. 2000년 9월 함주명 선생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문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되었음을 근거로 재심 개시를 결정하였다. 2005년 7월 15일, 지난한 재심 과정 끝에 서울고등법원은 함주명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2014년 함주명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인우 기자의 손을 빌려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 책으로 담아내었다. 책의 서문에서 함주명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고문의 잔혹함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는 반인간적·반인률적 범죄를 고발하고 싶었다.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무고한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조작하여 감옥에 가두고 가정을 파탄 내며 그 자식들을 간첩의 가족으로 매도하는 이런 비인간적·반도덕적·불법적 행위는 시효 없이 끝까지 추적하여 그 죄를 묻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 누구도 이런 범죄를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하게끔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사건을 비롯한 군부독재 시대의 수많은 조작간첩사건(재일동포간첩사건 포함)이 분단과 냉전 시대의 산물이란 점이다. 우리나라는 민족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결국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아직도 남북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이제 다행히 많은 조작간첩사건이 재심을 통해 오랜 누명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하루빨리 남북이 극한적인 대결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접어들어 다시는 나와 같은 분단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
그의 삶은 어떠했는가? 선생의 명복을 빌며 선생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함주명 #간첩조작사건피해생존자 #작고 #영면 #삶 #바람 #간첩조작 #국가폭력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간첩조작과 고문, 국가폭력은 ‘가정’을 찢어놓았다. (0) | 2023.05.02 |
---|---|
[단상] 고문피해자와 가족에게도 따뜻한 5월이길 바라며 (0) | 2023.05.01 |
[단상] 최초의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추모하며 (0) | 2023.04.26 |
[단상] 그들에게 간첩조작의 대상은 승진의 지름길에 불과했다 (0) | 2023.04.25 |
[단상] 국민을 가리켜 간첩이라 하다 (0) | 2023.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