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름, 조신치.
2022년 6월 23일(목) 오후 2시 10분,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제5형사부(서승렬, 박재영, 김상철 판사)는 또 하나의 간첩조작 사건의 무죄판결이 선고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분은 재일동포 故 조신치 선생으로, 지난 1984년 모국을 찾았으나 당시 국가는 간첩을 만들기 위해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날 재판부는 당시 국가기관에 의한 고문이 있었으며,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증언은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임의성이 없음을 밝히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에는 심재환 담당 변호사(법무법인 향법)와 김덕환 선생, 이동석 선생, 그리고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이화영 소장과 박민중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안타깝게도 그 외 유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약 40여 년 만에 무죄를 받은 故 조신치 선생은 1956년 일본 간사이 북서부에 위치한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조신치 선생은 조선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1971년 효고현 아마가사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한 후 조선장학회 장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후 조신치 선생은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동양문화학을 전공했으나 이듬해 중퇴를 하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타이신 금속]에 취직하며 가업을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8년 정도 일을 하던 조신치 선생은 1983년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연세대학교 어학당으로 유학을 오게 된다. 약 1년 여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1984년 4월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5급을 수료하고 8월 하순에 잠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2주 정도의 시간을 일본에서 보내고 조신치 선생은 모국어를 더 깊이 배우기 위해 9월 3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 김포공항에서 조신치 선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보안사령부였다.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에서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9월 3일 김포공항에서 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연행된 조신치 선생은 10월 7일 서울구치소로 수감되었다. 즉, 9월 3일부터 10월 7일까지 약 35일 동안 조신치 선생은 보안사령부에서 불법 구금되었고, 동시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서울구치소로 수감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13일 재일동포 윤정헌, 조일치 등과 함께 “학원침투간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결국 11월 7일, 조신치 선생은 모국에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렇게 기소된 조신치 선생은 법정에서 줄곧 범죄 혐의를 부정하였으며, 재판부를 향후 조사과정에서 물고문을 비롯한 수많은 고문이 있었음을 고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피고인의 증언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고, 검사는 1985년 3월 19일 여섯 번째 공판에서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그리고 4월 2일 1심에서 재판부는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했다. 이후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이어갔으나 같은 해 서울 고등법원은 원심을 유지하였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재판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되며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11월 12일, 대법원의 이일규 판사는 검사의 법리적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며 고등법원에 재심리를 요청하였다. 이후 진행된 환송심 재판에서 조신치 선생에게 씌어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중에서 국가보안법 혐의는 무죄가 되었다. 이에 4월 1일 환송심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은 무죄가 되었고, 반공법 위반은 2년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징역 7년에서 징역 2년으로 형이 확정된 것이다. 그렇게 감형이 되고 1986년 10월 10일 광주교도소에서 석방되었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 11일 조신치 선생은 모국을 떠났다.
1970-80년대 수사기관과 사법부에 의해 조작된 간첩조작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조신치 선생의 경우는 비교적 다행인 것처럼 보인다. 당시 사건들에서 수많은 고문피해자들이 사형을 당하기도 하고, 무기징역 등 1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넘는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조신치 선생은 우리가 그동안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징역 2년이라는 시간은 비교적 짧다는 자의적 해석에 기대어. 그러나 조신치 선생은 모국을 찾았다가 약 35일의 시간 동안 불법구금과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모국에서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고문피해자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1987년부터 일본 각지의 구원회에 참여하며, 가족들을 위로하는데 노력했다. 이런 맥락에서 1990년 10월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에 참여하며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동참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조신치 선생은 자신이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먼저 돌아온 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렇게 빚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던 조신치 선생은 안타깝게도 1991년 향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조신치 선생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이번 재심 재판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재판 과정을 통해 조금씩 이분의 삶을 되돌아보며,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함께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조신치 선생은 1985년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그 장소에서 고인이 되어 2022년 똑같은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시 한번 고문피해자인 조신치 선생과 그 유족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무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래 표는 지난 4년 동안 진행된 재심 재판의 일정을 간략하게 정리한 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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