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센터2017. 7. 10. 11:02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6월 23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국회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고문 생존자분들과 여러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등 약 300 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1부 함께 하는 마당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가폭력의 문제는 희생자 치유지원 뿐 아니라 가해자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인사말에서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의 공동대표인 인재근 국회의원 역시 고문피해자 문제의 국가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올해에는 현재 발의상태인 고문피해자 치유지원법안의 입법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였다. 우원식 의원도 국회차원에서 고문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약속하였다.


 손창호 소장은 지난 1년간 김근태 기념치유센터의 활동을 소개하였다.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및 집단상담 그리고 재심 법정동행 지원은 예년과 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트라우마 치유”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내 삶이 인권을 만나다” 등의 주제 아래 지난 1년간 총 10회의 대중 공개강좌를 하였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에 재일동포 양심수 역 사전시실을 개관한 바 있다. 특히 2016년에는 김근태 기념치유센터가 국제 고문피해자 재활협회(IRCT)의 회원이 됨으로써 국제적 연대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올 해의 감사패는 유해우(유동우) 선생에게 주어졌다. 유해우 선생은 지난 40년 이상의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다. 본인 역시 1981년 소위 “학림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바 있는 유해우 선생은 2012년 이후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고문피해자 치유지원에도 힘써오고 있다.



 1부 마지막으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합창이 있었다. 이번에 부른 노래 “꽃”은 청중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였다.


 2부 치유마당은 임진택 명창의 지도하에 준비한 고문생존자 판소리 모임인 길음 판소리의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사철가” 와 “농부가”로 흥이 돋워진 청중의 신명은 앵콜곡 “고고천변”에서 최고에 이르렀다.


 두 번째 무대는 이소선합창단 대표를 맡고 있는 테너 임정현 님이 맡아주었다. “님이 오시는 지” “남촌” “후대에게” “상록수”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였다. 특히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 은 청중들과 함께 부르며 참석자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식 행사가 모두 마친 후에 국회 헌정기념관 식당에서 참석자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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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울릉도 1974> - 특별한 가족의 출연

 

<상처꽃- 울릉도 1974>는 다양한 분들의 카메오출연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419일 토요일은 참 특별한 가족이 무대에 섰다.

 

70년대 노동운동사에 빛나는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쓴 노동운동가 유동우선생이 주심판사로, 그의 딸과 사위가 배석판사로 나란히 법복을 입었다.

 

 

[상처꽃-울릉도1974_4월 19일_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몇 달 전 EBS <동행>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화제를 낳은 바 있는 그의 가족사는 우리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이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유동우선생도 남영동에서 받은 모진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들고 피폐해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졌다. 딸은 처자를 버리고천지를 떠돌며 헤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꽁꽁 한이 맺혔다.

 

그렇게 사람을 기피하고 떠돌던 유동우선생은 지난 해 인권의학연구소의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창 하나가 가만히 열렸다고 했다. 주변의 응원을 통해 딸에게 손을 내밀어볼 용기도 얻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딸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잠깐의 동행을 위해 이날도 멀리 군산에서 남편과 아이들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 앉아 연극을 보는 내내 흐느꼈다.

 

연극이 끝난 후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 서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 연극 중에서 특히 유동우선생의 딸 유현경씨를 더 울렸을 여자배우 정연심씨가 그들 부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동행을 보았다며 유현경씨 손을 잡고 또 울먹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손주들, 조화순 목사, 신인령 선생, 임진택 감독]

 

감자탕 집에 마련한 뒤풀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유현경씨를 보는 순간 와락 부둥켜안았던 조화순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였던 신인령선생, 권영길선생, 임진택감독,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

 

조화순목사는 기막힌 인연을 풀어놓았다.

1974년 대구의 교도소에서 울릉도간첩단사건으로 구속된 김용희선생과 옆방에서 징역을 살았다는 것이다. 조화순목사는 긴급조치위반이었지만 워낙이 빨갱이로 악명(?)높았던 터라, 여자간첩이 둘이나 들어왔다고 교도소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두 분은 각각 독방이었는데 고개를 내밀 수도 없는 배식구에 팔을 넣어 내 저으며 통방을 통해 우정을 쌓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두 분이 가끔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져있구나 싶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새삼 놀라워했다.


 

[상처꽃-울릉도1974_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김용희(연극의 송인숙)과의 감옥에서의 인연을 설명하시는 조화순 목사]

 

그러나 세월호침몰 사건으로 주로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온 사람들은, 우울한 역사의 한 장면 앞에서 거듭 무겁고 침통해했다.

다행히 아직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유동우선생의 어린 손주들 해맑음에 잠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해맑은 미소의 손주들]

 

 

글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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