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날조되었다.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간첩단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작했던 국가 공무원들은 특진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이었는지 재심을 하나씩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지난 2010년 7월 15일 재일동포 이종수 간첩사건의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국군기무사 전신)가 안기부(국정원 전신) 명의로 피고인을 .. 더보기
[이사회] 인권의학연구소, 제3차 정기이사회를 개최하다. 7월 14일 (수) 오후 5시, 인권의학연구소는 제3차 정기이사회를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하였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상황에서 지난 제2차 이사회에 이어 현장 회의 대신 온라인 회의방식을 결정하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상임이사, 박재영 이사, 백재중 이사, 손창호 이사, 유충희 이사, 이상희 이사, 주영수 이사, 최창남 이사와 염형국 감사가 참석하였다. 이화영 상임이사의 지난 2차 이사회 회의록 보고에 이어 사무국에서 2021년도 2분기 사업과 재정에 대해 보고하였다. 사업 보고 후 교육팀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의료인 대상 인권교육사업’ 교재의 단행본 출간 여부에 대한 박재영 이사의 질문과 후원 중지 회원의 중지 이유에 대한 유충희 이사의 질문이 있었다. 이어진 ”2021년 .. 더보기
[동행] 하원차랑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동행] 하원차랑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1년 7월 21일 오후 6시30분, 하원차랑 선생이 소천했다. 향년 81세. 이튿날 22일 오전 소천 소식을 접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은 김장호 선생, 임채도 선생, 박민중 활동가와 함께 경상남도 밀양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빈소가 마련된 밀양병원 장례식장에서 하원차랑 선생의 영정을 마주하니 모두 가슴이 먹먹했다. 특히, 지난주 하원차랑 선생이 병원을 퇴원하면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자조모임 회원들과 함께 밀양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그 아쉬움은 더욱 진하게 남았다. 하원차랑 선생은 194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부산에서 주로 사업을 했으나, 1970년대 말 오일쇼크로 국내 경제 불황으로 일본 오사카 숙부를 통해 .. 더보기
영원한 우리의 친구!! [영원한 우리의 친구!!] 7월 20일 오후 6시 30분경 하원차랑 선생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도 아파하시던 선생님께서 이제 더는 아프시지 않을 영원한 안식처로 편안히 가셨답니다. 가시는 길에 북망산 굽이굽이 돌아 저희들을 생각하며 되돌아보셨을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직도 형 갑장 동생 하며 부르시던 모습이 우리들의 온몸에 꽉 차 있건만, 여전히 하원차랑 선생의 모습이 우리들의 뇌리에 아지랑이처럼 맴돌기만 합니다. 너무도 아쉬운 부분은 무죄 선고받고 이제 좀 재미있게 세상에서 두 어깨 으쓱이며 남부럽지 않게 가족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도 제대로 못 하시고, 우리와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원차랑 선생을 놓아주면 안 되었지만, ‘잘 가라 친구야’ .. 더보기
국가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사법부 [사법부는 국가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다]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인혁당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 군부독재 하에 행정부와 사법부가 한 통속이 되어 양산했던 수많은 국가폭력의 사례들. 우리는 쉽게 이런 일들이 4-50년 전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아닙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 또는 유가족들은 여전히 이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재심이라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다루는 행정부와 사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고려하여 이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지난 양승태 대법원장.. 더보기
[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 민족일보와 조용수. 대부분이 기억하지 못하는 언론사와 그 언론사 사장의 이름입니다.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 창간이 되었습니다. 창간 당시, 민족일보는 4가지 경영방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2.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3.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4. 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하는 신문 이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던 민족일보는 창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매일 4만 여부를 발행하는 신문이 되었고, 당시 가판 판매 부수는 1위였다고 합니다. 이런 민족일보를 박정희 군부독재는 가만 놔둘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서른한 살 언론인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바른 소.. 더보기
[이숙희 선생 인터뷰-②] “노동운동, 10년의 재판, 그리고 개인 이숙희” [이숙희 선생 인터뷰-②] 노동운동, 10년의 재판, 그리고 개인 이숙희” 이숙희 선생에게 노동조합 활동은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힘들지 않고, 재미 있었던’ 긍정적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어린 이숙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노동자가 되고 노동 조합을 만났는지 알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노동조합 활동, 근 10년 동안 이어졌던 청계피복 노동자 법정 싸움, 그리고 선생의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장소를 달라! Q. 72년 당시 청계피복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숙희) 교육 장소가 없었던 것이 힘들었죠. 그때 노동조합 사무실이 7평 정도밖에 안되어 평화시장 옥상에 의자를 깔고 교육을 했거든요. 한 번은 노동조합에서 중등부 과정을 신설했는데, 200명이 넘게 신청한.. 더보기
[이목희 전 의원, 40년 만에 무죄] [이목희 전 의원, 40년 만에 무죄] 어제(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목희 전 의원이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지만 노동조합원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이목희 의원은 어떻게든 노동운동의 불씨를 끄기 위한 독재정권의 악랄한 꼼수의 첫 번째 피해자였습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당시 노동운동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피해를 보셨던 분들의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이 보상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715_0001514395&cID=10201&pID=10200 '3자개입 옥살이' 이목희.. 더보기
“아버지, 특별법이 통과됐대요. 특별법이…” [73년이라는 세월의 눈물] 지난 6월 29일, 국회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73년 만에 수많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길이 열렸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고, 당시 여순사건 주모자로 지목당해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주검을 찾지 못하는 피해자의 딸이 주검 없는 빈 무덤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 특별법이 통과됐대요. 특별법이…” 73년 동안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눈물이 터졌을까. 그 모진 세월 동안 감내해야 했던 그 아픔과 설움의 무게는 어떠했을까.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국가폭력을 직면해야 하며, 이러한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 "과연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더보기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이번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70대 여성분에게 적용됐었던 혐의는 '간첩 방조죄'였다. 1968년 서해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던 남편이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당시 국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아온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 남편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여성분에게는 '간첩 방조죄' 혐의를 씌웠다. 그리고 49년 만에 그 억울함이 재심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이다. 단순히 기사의 내용이 아니라 잠시나마 내가 이 피해자가 되어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한평생 억울함은 물론 이로 인해 경제적 불이익을 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