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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단상]검찰은 재심을 원치 않는가?] [검찰은 재심을 원치 않는가?] 지난 5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960년대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故 오경무씨의 재심사건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당초 검찰은 불법 구금이 의심돼 재심개시에 동의한다며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이날 공판에서 입장과 태도를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검찰은 당시 불법 체포나 구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다음 기일에 증거목록을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변호인 측에 따르면,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기에, 검찰의 의도는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증인으로 불러내겠단 것입니다. 변호인 측은 불필요한 증인신문과 반복될 절차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故 오경무 씨 형제들은 어떻게 간.. 더보기
‘공소시효’라는 커튼 뒤에 숨어있는 가해자들 ‘공소시효’라는 커튼 뒤에 숨어있는 가해자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며, 외면했습니다.” 20년 전, 고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할 때, 처절하게 외쳤던 말입니다. 이 외침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적용되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 2시,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그 토론회는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입법화]를 위한 논의의 자리였습니다. 토론회는 무려 3시간이 넘게 진행되었고, 주최의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진성준 의원과 주최는 아니지만 현장에 참여했던 강민정 의원은 모든 순서가 마칠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끝까지 경청하.. 더보기
[단상] 검찰은 재심 청구 기각을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재심 청구 기각을 주장했습니다] 故 한삼택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월 수사관들의 고문에 의해 故 한삼택 씨가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을 인정하며, 진실규명 결정 및 재심을 권고했습니다. 조사 결과 법원은 1970년 10월 8일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故 한삼택 씨는 9월 29일부터 불법 구금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게 진행된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 재심 첫 심문에 검찰은 재심 청구 기각을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구속영장 발부 전 구금된 사실에 대해 “자료가 잘못됐을 수 있다.”, 故 한삼택 씨의 자녀, 조카의 진술에 대해 “추측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은 사건이 50년 .. 더보기
[단상]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제주 4.3.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로 규정,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대량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후 군사독재정권은 정권의 위기 때마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간첩조작의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구타, 살해 및 가족 협박, 물고문, 전기고문, 수면고문 등 한 인간의 몸에 다 담을 수 없는 폭력 끝에 무고한 도민들은 거짓 자백을 토해냈고 간첩이 되었습니다. 독재정권은 사법부를 장악했고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간첩으로 지목되고 연루되는 순간 끝장이었기에,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손가락질하거나 침묵하였습니다. ‘간첩’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진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한 평생을 간첩이란 낙인과 연좌제로 고통받아왔습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 더보기
[단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가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가 되었다] 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부터 연좌제를 금지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연좌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광복 후 연좌제는 부활하여 유지되었고, 독재정권이 정권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의 자식들은 피해자가 짓지 않은 죄에 같이 좌죄되어 고통 받고 고난을 겪었습니다. 뜻하더라도 군인과 공무원은 물론 할 수 없었고, 응시하더라도 신원조회를 통해 탈락되었습니다. 설사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간첩의 자식’이란 꼬리표가 쫓아다니며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작간첩의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967년 6월 8일, 박정희 정권은 .. 더보기
[단상] 간첩조작과 고문, 국가폭력은 ‘가정’을 찢어놓았다. [단상] 간첩조작과 고문, 국가폭력은 ‘가정’을 찢어놓았다. 가정의 달의 ‘가정’에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요, 둘째는 ‘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를 일컫는다. 가정은 가족과 유의어이지만,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나타내는 가족보다 더 큰 의미로 쓰였으리라. 오늘날 핵가족화된 가정과는 달리 과거 가정은 친인척을 아우른 공동체를 의미하지 않았을까? 가정의 해체와 축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국가폭력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친지간에 화목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일본에 사는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대신한 故 김두홍 씨에게 고마움을 느낀 그의 큰어머니가 초대한 일본 관광이 간첩조작의 덫이 되었다. .. 더보기
[단상] 고문피해자와 가족에게도 따뜻한 5월이길 바라며 [고문피해자와 가족에게도 따뜻한 5월이길 바라며]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에는 가족 간의 단란하고 오붓한 관계를 기념하는 날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과 가족에게 ‘5월’은 참 메마르고 서글픈 달입니다. 간첩조작과 고문을 비롯한 국가폭력은 고문피해자와 가족의 삶과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1986년 강광보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고문 취조를 받은 강병선 씨는 현재 차상위계층으로 정부지원금과 노령연금을 받아가며 2평 남짓의 여인숙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병선 씨와 강광보 씨의 관계란 먼 친척인 10촌으로 초등학생 때 문중 벌초로 잠시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었습니다. 강병선 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은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 일본에 밀항했다가 송환당한 사실 하나 때문이었습.. 더보기
[단상] 최초의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추모하며 [최초의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추모하며] 지난 4월 24일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추모일’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15-17년에 걸쳐 오스만 제국이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대량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최초의 집단학살, 제노사이드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희생된 이들은 최대 15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수백만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단행하면서 누가 아르메니아인들의 죽음을 기억하겠는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과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끔직한 집단학살과 국가폭력이 재발되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4월24일 #아르메니아인대학살 #집단학살.. 더보기
[단상] 그들에게 간첩조작의 대상은 승진의 지름길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간첩조작의 대상은 승진의 지름길에 불과했다] 군사독재정권은 정권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 저항과 의식 확산을 막고, 공포로써 통치하기 위해 수많은 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간첩으로 지목된 대상은 고문 끝에 허위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문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은 이를 통해 부와 영예를 누렸습니다. 피해자들을 향한 국가폭력은 실로 무지막지하였고 얼토당토않았습니다. 간첩조작사건피해자들 중 다수의 제주도민들은 일본에 방문한 것이 조총련과 엮여져 간첩으로 몰렸습니다. 그런데 양영배 씨는 그와는 일절 상관없이 간첩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양영배 씨는 보안사령부의 제주 지부인 ‘한라기업사’에 끌려갔습니다. 양영배 씨를 끌고 간 이들은 양영배 씨에게 북한에 가 폭탄제조법을 배운 .. 더보기
[단상] 국민을 가리켜 간첩이라 하다 [단상] 국민을 가리켜 간첩이라 하다 “당시 한라기업사를 다녀오면 반병신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됐다.” 전두환 집권 시기 제주도에는 보안사령부의 지부로 민간 기업 형태인 ‘한라기업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한라기업사에 다녀오면 반병신이 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하나둘 사라졌던 사람들은 몸이 크게 상한 채 다시 나타나곤 했습니다. 양의남 씨는 소문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한라기업사 직원들에게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양의남 씨에게 간첩 서경윤과의 연관성을 캐물었습니다. 알고 있다 답하니 대뜸 다음 질문으로 몇 번 북한을 다녀왔는지를 물었습니다. 다녀온 적이 없기에 사실 그대로 다녀온 적이 없다고 말하니 돌아온 것은 무수히 잔혹한 폭력이었습니다. 양의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