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은

억압적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이들의 헌신과

정권 유지를 위해 고문으로 내몰렸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의 대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고문이 일상화되었던 시대도 또한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무관심 속에 홀로 저마다의 고통을 이해하고 견뎌야 했습니다.

 

김근태 역시 그랬습니다.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떠나갔지만 우리에게 기억과 치유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건립을 위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김근태들이 고통을 홀로 견디다 쓰러져 가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깨우침때문입니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이 땅의 수많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김근태가 열은 치유센터 건립을 위해 

우리 함께 가기로 약속합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는 국내 첫 고문피해자 전문 민간 치유센터로서

고문피해자들의 치유와 재활을 통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001-808614

 

 

 

현 후원금 총액은 216,651,336원 이고 후원해주신 분은 141명입니다.
 
함께하고 있는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들은 70명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공 동 대 표 : 함세웅, 김상근, 이창복, 이석태, 인재근

 

설립추진위원 :강창일, 김동규, 김민기, 김봉준, 김부겸, 김수정, 김영준, 김용익, 김형태,

                      문병호, 민병두, 박경욱, 박민규, 박순희, 박영선, 박재영, 석정각, 손창호,

                      송기복, 송기홍, 신인령, 신좌섭, 심재환, 양길승, 오영식, 유동우, 유시춘,

                      유영표, 유은혜, 유인태, 유종일, 유충희, 윤영전, 이낙연, 이명춘, 이부영,

                      이영문, 이왕준, 이재명, 이 철, 이 철(일), 임수경, 정강자, 정동영, 정성헌,

                      정인재, 정청래, 주영수, 차인현, 최규성, 천정배, 최인순, 최창남, 한명숙,

                      한홍구, 함주명, 현승민, 황주영

 

집 행 위 원 :  남평오, 문국주, 염형국, 이상희, 임채도, 현창하, 이화영

           

 

김근태의 이름으로 짓는 “고문피해자 트라우마 치유 센터”

 

 

인권의학연구소 (imhrc@naver.com)

 

 

지난 해 12월 30일 영면한 고 김근태 의장의 영결식이 열린 명동성당. 오전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추모미사를 집전하는 함세웅 신부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을 졌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생전에 김 고문에게 '더 싸우라', '더 열정적으로 앞에 나서라'고 요구했다"며 "그가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전기 고문을 당한 김 고문은 이전과 다른 내적, 외적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분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청년 시절의 열정을 갖고 앞장서라고 밀어붙였다"며 "그걸 반성하고 인재근 여사에게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늘을 계기로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치유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며 "그동안 가족들의 아픔을 너무 잊고 살았다. 앞으로 국회를 통해, 법개정을 통해 치유센터를 건립할 수 있도록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8개월 남짓 시간이 흐른 지난 8월 20일 함세웅 신부와 인재근 의원, 김상근 목사, 이창복 전 전민련 의장, 이석태 변호사,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 등은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는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발생한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최근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 국가공권력 남용사건 피해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외상 치유를 위한 민간단위의 전문 치유센터를 목표로 한다.

고문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각계의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는 올해 안에 집행기구를 조직하고 50억원 설립기금 마련 등 치유센터건립을 본격적으로 기획 진행하기로 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는 고문 피해자들을 위한 전문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을 개발·진행하고, 국가폭력 피해와 피해자 치유에 관한 연구 조사 활동, 고문방지와 피해보상 법제화,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연대 기금 조성, 국제고문방지기구들과 협력사업 등을 수행할 계획이다.

 

한편, 2011년 인권의학연구소의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문피해자들의 76.5%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고, 신체화증상(43.2%), 대인관계 적응문제(27.7%), 우울(25.4%), 불안(31.9%), 적대감(27.7%) 등 정서적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24.4%로 일반인 평균에 비해 2.4배 높았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의 경우도 비슷한 정도의 정신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고문피해자 본인과 그 가족들은 국가폭력을 경험한 지 20~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정상적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5·18항쟁 피해자와 4·3항쟁 피해자를 비롯 다수의 과거사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정치적 사과와 경제적 보상, 지원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삶의 질은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제적 보상이 이미 이루어진 5·18 피해자들의 경우, 2006년 5·18기념재단의 보고에 의하면 전체 5·18 유공자 가운데 절반정도가 여전히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상태에 처해 있다. 5·18 유공자들의 자살 통계를 보면, 1980년대 25명, 1990년대 3명, 2000~20011년까지 12명으로 경제적 보상 이후 자살률이 오히려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가폭력피해자들의 온전한 삶으로의 회복이 법적, 정치적, 경제적 결정 외 시민사회 내 민주적 사회윤리의 정착과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과 ‘치유’가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1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2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3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4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5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6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7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8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9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10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후원의 밤 -11

 

 

- 무관심을 분노로, 분노를 행동으로-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문가해자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도 아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 Halfdan Rasmussen

 

 

[김근태치유센터] 먼저 나선 사람들의 첫 번째 모임

지난 10월25일,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마련을 위해 먼저 나선 사람들이 국회의원회관 527-1 회의실에서 함께 모였다. 이들은 독재 정권의 억압에 저항한 이들이었고 또 독재 정권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또는 독재 정권에 항거한 이들을 지지하거나 희생자들을 지원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지난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각각 서있는 곳은 달랐지만 국가폭력의 부당함과 피해자의 치유에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저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김근태를 잊지않고 자리해 주셔서 고맙다"는 인재근 의원의 여는 말로 모임을 시작하였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은 기조발제를 통해 국가폭력피해자들의 후유증과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필요성을 함께 생각하는 주제로 제시하였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나아진 인권 상황은 과거 억압정권에 저항하였던 이들이 희생의 결과이며 더 이상 국가폭력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피해자를 치유하고 돌보아야 함을 전하였다. 고 김근태 님은 고문피해자이자 생존자였으며 이제는 치유의 길을 열고 있으니 아직도 이땅의 수많은 드러나지 않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김근태기념 치유센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널리 드러내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가능성을 이제 치유센터 설립을 위해 먼저나선 사람들이 열고 있었다.

김봉준 설립위원은 고문피해자 뿐 아니라 광범위한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게 지원과 혜택이 주어져야하고 또한 치유를 위해 의료적 접근 뿐 아니라 문화예술적 치유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최창남 위원은 치유센터 건립추진운동을 통해 국가폭력을 알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자기성찰하고 의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대중적 시민적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하였고, 윤영전, 유종일 위원은 이를 위해 언론, 시민들을 함께 하면 더 큰 진전이 있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동영 위원은 기조발제 슬라이드를 보면서 과거 보안사에서의 고문 경험이 의식하지 못했으나 일상의 삶에서 후유증으로 남아있음을 알게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정권교체로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다. 중요한 지적이었다. 정의(justice)의 실현은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가해자가 처벌되기는 커녕 잘먹고 잘 살고있는 부정의(injustice)를 확인하면서 피해자는 극심한 분노를 갖기 때문이다.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위원회에는 다수의 고문피해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함주명, 송기복, 송기홍, 유해우 위원들이 대표적이다. 모임이 마무리될 즈음 송기복, 송기홍 위원은 함세웅 이사장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하면서 가족들과 상의하여 송씨 일가 명의로 1억원의 설립기금을 약정하였다. 부인과 함께 참석한 송기홍 위원은 "내 옆을 지켜준 안사람의 권유가 내 마음을 움직였고, 고맙다. 누님과 함께 그 뜻을 하기로 한 것에 안사람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고 하여 모임에 참석한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하였다. 가슴 먹먹해졌다.

먹먹해진 가슴 추스리며 12월10일 후원행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모임 일정을 다 마친 이후에도 설립위원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인 많은 이들이 국가폭력피해자들이었지만 또 모두가 서로에게 치유자이기도 하였다. 따뜻해진 마음으로 첫 모임을 마쳤다.

지난 11월22일 (목) 오전 10시,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7년간 옥살이를 한 이성희(86) 선생님이 38년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동오)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성희 선생님 재심에서 반국가단체에 특수잠입하고 군사기밀을 탐지한 혐의(국가보안법상 간첩 및 특수잠입·탈출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밀입북한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중앙정보부에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범죄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들 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반국가단체 지령을 받았다거나 재일교포 이좌영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동생으로부터 군사기밀을 탐지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결문에 명시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북한에 잠입·탈출했다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온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북한 실정과 사회적 호기심 때문에 밀입북한 것으로 보이는 점, 잠입 기간이 짧고 국익을 해하는 정도는 아닌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성희 선생님은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교수이자 교무처장을 지내던 중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학생과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어지자 이를 억압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는 울릉도에서 북한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47명을 검거하였다며 고문에 의해 조작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17년간의 옥살이를 마치었으나 친인척의 외면, 보안관찰 등으로 출옥후에도 고통이 지속되었던 이성희 선생님은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의 진실규명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고,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8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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